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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잡학

유명한 곳의 다리나 난간에 자물쇠를 누가 먼저 달기 시작했을까?

by iamjabez 2025. 2. 15.

 

괌 여행에서 사랑의 절벽에 갔다가 난간에 달린 엄청나게 많은 플라스틱 하트 자물쇠를 보면서 문득 누가 먼저 이런 거청한 사랑의 약속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파봤다. 

 

관광지에서 사랑의 자물쇠(Love Lock)를 다는 문화는 비교적 최근에 확산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기원은 20세기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기원과 역사

  • 세르비아의 전설 (1차 세계대전 전후)

사랑의 자물쇠 문화의 기원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세르비아의 브르냐츠카 반야(Vrnjačka Banja) 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야기에 따르면, 한 세르비아 여교사 나다(Nada) 와 군인 렐리야(Reljia) 는 사랑에 빠졌지만, 렐리야가 전쟁에 나간 뒤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상심한 나다는 결국 세상을 떠났고, 그 후로 마을의 젊은 여성들이 같은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 연인의 이름을 자물쇠에 새겨 다리 난간에 채우고 열쇠를 던지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 이탈리아 피렌체의 폰테 베키오 (20세기 중반)

1950~60년대부터 이탈리아 피렌체의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 다리 에서 금세공사들이 다리 난간에 자물쇠를 채우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1990년대부터 관광객들이 이를 따라 하면서 사랑의 자물쇠 문화가 확산되었다는 설이 있다. 

 

  • 이탈리아 페데리코 모치아의 소설 『세 번 너를 사랑해』

이탈리아 작가 페데리코 모치아의 소설 세번 너를 사랑해에서는 이탈리아의 밀바오 다리를 배경으로 연인들이 다리에 자물쇠를 걸고 사랑을 맹세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이 소설이 영화로 제작되면서 자물쇠 문화의 폭발이 일어나게 된다. 

 

  • 프랑스 파리의 폰 데자르 (2000년대)

2000년대 이후, 사랑의 자물쇠 문화는 파리의 '예술의 다리'(Pont des Arts) 에서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세계 각국의 연인들이 다리에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센 강에 던지면서 영원한 사랑을 기원하는 명소가 되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자물쇠로 인해 다리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일부 난간이 붕괴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2015년에 자물쇠를 제거하고 이 전통을 금지해버렸다. 

 

  • 세계적인 확산

이후 유럽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에서도 유명한 관광지에서 사랑의 자물쇠 문화가 정착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남산타워 (N서울타워)가 대표적인 명소이며, 일본에서는 도쿄 타워 와 후지산 주변 전망대 등이 유명하다고 한다. 

 

  • 논란과 환경 문제

우리나라에서 자물쇠를 걸 만한 난간이 있으면 자물쇠가 걸려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무분별한 자물쇠 설치로 인해 다리나 난간이 손상되거나 과도한 무게로 인해 철거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일부 도시에서는 이를 금지하거나 대체하는 방법을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물쇠 장소 5곳

 

1. 프랑스 - 폰 데자르 (Pont des Arts)

위치: 파리, 프랑스

가장 대표적인 사랑의 자물쇠 명소였지만, 2015년 다리 붕괴 위험으로 자물쇠가 철거됨.

여전히 파리에는 몽마르트르 벽 ‘Le Mur des Je t’aime’ 등 대체 명소가 있음.

 

2. 한국 - 남산서울타워 (N서울타워)

위치: 서울, 대한민국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랑의 자물쇠 명소 !

전망대 근처 난간과 사랑의 열쇠 존에 수많은 자물쇠가 걸려 있다. 여기에서는  열쇠를 버리는 대신 따로 보관하는 규칙이 있다. 

 

3. 이탈리아 - 베로나 줄리엣의 집 (Casa di Giulietta)

위치: 베로나, 이탈리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배경지로, 연인들이 사랑을 기원하며 자물쇠를 달기 시작함.

줄리엣의 발코니로 유명하며, 벽에 연인들의 메시지도 가득함.

 

4. 독일 - 호헨졸레른 다리 (Hohenzollern Bridge)

위치: 쾰른, 독일

라인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난간에 어마어마한 양의 자물쇠가 걸려 있음.

쾰른 대성당과 함께 멋진 뷰를 자랑하는 인기 명소. 그런데 왜 내가 여기에 갔을 때는 못봤을까?

 

5. 체코 - 프라하 카렐교 & 말라스트라나 (Lennon Wall 근처)

위치: 프라하, 체코

카렐교 인근의 작은 다리와 존 레논 벽 주변이 유명한 자물쇠 스팟이며 나도 건 적이 있는 곳이다. (누구랑 갔는지는 비밀이다) 이곳은 아름다는 프라하의 풍경과 함께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지만 지금은 금지되어 있다.

 


  나의 이야기

 

남산의 높은 언덕에서, 나는 첫 자물쇠를 걸었다. 떨리는 손끝으로 그 작은 금속 조각을 난간에 걸고,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우리의 사랑도 거기에 굳게 걸려있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영원할 것 같았고, 한 번 채운 자물쇠는 절대 녹슬지 않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나는 몇 번 더 다른 사랑과 함께 다른 곳에서 같은 손길로 또 다른 자물쇠를 걸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언제나 진심이었다. 양다리나 바람을 피운 것이 아니었다. 그때는 그 사람이 전부였으니까.

이제 그 모든 사랑은 어디에 걸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으며 차가운 쇠붙이처럼 빗물에 씻기고, 바람에 흔들리며 서서히 녹슬어간다. 한때의 설렘과 다짐은 기억 속 희미한 잔상이 되어, 난간의 수많은 자물쇠들 사이에 조용히 스며든다.

다행인 것은, 적어도 내 몸에는 그 흔적을 새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신처럼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 대신, 나의 한때의 사랑들은 그곳에 걸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녹슬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