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내 돈으로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푸른 낙원에서의 첫날
설날 연휴를 앞둔 1월, 우리는 괌으로 떠났다. 처음으로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다. 그동안 스스로 숙소를 예약하고 렌터카나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서 자유롭게 다니던 우리가 패키지여행을 선택한 이유는 4박 5일 내내 관광지에 끌려다니는 패키지여행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H투어에서 판매하는 패키지는 공항 픽업과 하루 정도의 관광을 제외하면 대부분 자유시간이 보장되는 일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공편의 시간이 적당했다. 아침에 출발해서 호텔 체크인 시간 즈음에 도착할 수 있어서 시간 낭비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제일 마음에 들었다.
여정의 시작
새벽 4시 30분, 잠에서 덜 깬 딸을 안다시피 해서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눈을 비비며 길을 나섰지만 공항에 도착한 순간 긴 줄이 우리를 반겼다.
“왠 줄이 이렇게 길어? 전쟁이라도 났어?”
아내가 얼굴을 찌뿌리며 말했다. 속삭이듯 말하는 아내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설 연휴에 인천공항이 미어터질 것이라는 것은 예상했지만 아직 설 연휴가 시작하려면 사흘이나 남았는데도 보안 검색대의 줄은 피난민 행렬만큼이나 길었다.
마침내 게이트에 도착했을 때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때 예상치 못한 방송이 흘러나왔다.
“비행기 연결 관계로 탑승이 한 시간 지연됩니다.”
"아빠! 비행기가 기차야? 왜 연결해?"
"그러게 말이다. 핸드폰 그만 보고 잠이나 자!"
긴 기다림 끝에 결국 어디에서 뭘 연결한 지도 모른 채 우리 비행기는 떠났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괌의 푸른 하늘이 우리를 맞이했다.
첫 만남, 호시노 리조나레 리조트
“잘 왔어.”
태양이 뜨거운 숨결로 속삭였다. 차갑던 겨울 공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숨을 들이마시자마자 비염까지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시골의 작은 버스 터미널 같은 괌 공항에서 가이드를 만나 차에 올라 호텔로 향하는 길,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호시노 호텔에 도착한 순간, 로비의 한가로움에 마음이 놓였다. 여기에서 또 줄을 서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온 것 같아.”
아내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일본인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반대로 일본인들은 “한국에 온 것 같아.”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은 세 명이었다. 하지만 방은 열 명도 잘 수 있을 만큼 넓었다. 더블 침대 두 개가 놓인 넓은 공간.
"와! 진짜 넓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방 속에 엄마 넣어 올 걸!"
아내가 침대에 몸을 던지며 말했다.
좋은 곳에 가면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운 법.
“가위 바위 보! 혼자 침대 쓰는 사람 정하자!”
운 좋게 내가 이겼다. 아내와 딸이 아쉬운 듯 투덜거렸지만, 사실 코 고는 나와 함께 자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와! 여기 비데봐. 그냥 수도야. 최고다!"
욕실에 다녀온 아내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욕실은 깨끗했고 어매니티도 잘 갖춰져 있었다. 좀 낡아 보이는 것이 흠이지만 어차피 나도 낡은 사람이다.
아내의 말대로 비데가 마음에 들었다. 집에서는 조준을 잘해야 하는데 여기 비데는 마치 볼일을 본 뒤에 퐁퐁 솟아나는 샘물에 엉덩이를 맡기는 느낌이 들었다. 어릴 적 엄마가 씻겨주던 느낌.
에메랄드 빛 바다, 잔잔한 물결
베란다 문을 열자, 가슴이 탁 트였다. 끝없는 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해변. 우리만의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파도가 거의 없어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에 얼른 안기고 싶었다.
바다는 마치 커다란 유리 조각처럼 반짝였다. 푸른 하늘을 비추며 투명하게 빛나는 물결은 끝이 없었다. 햇살이 부드럽게 물 위를 스치고, 그 반짝임이 마치 수천 개의 별이 떠 있는 듯했다. 바다는 너무나도 잔잔해서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발끝이 물에 닿자마자 따뜻한 감촉이 스며들었다. 얕고 깊이가 일정한 바다는 끝없이 걸어가도 여전히 온화한 품을 내어주는 듯했다. 잔잔한 물살이 천천히 밀려왔다가 발목을 감싸고, 다시 조용히 멀어졌다. 맑디 맑은 수면 아래로 부드러운 모래가 펼쳐졌고, 물이 찰랑거릴 때마다 빛이 산란하며 부드러운 빛줄기를 만들어냈다.
하늘빛을 머금은 바다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 색이 변했다. 한순간은 깊은 에메랄드빛, 또 한순간은 옅은 옥색을 띠며 부드럽게 빛났다. 가만히 서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아주 어린 파도가 밀려와 속삭였다.
"이 순간을 간직해."
고즈넉한 수영장, 따사로운 고요함
수영장은 호텔의 행사 때문에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는 따사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수면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은 햇살이 반짝이며 물결에 부서졌다. 바람 한 점 없는 공간에, 온수로 데워진 물이 조용히 출렁였다. 가끔씩 불어오는 미풍이 물결을 살며시 흔들며 조용한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낮게 깔린 태양빛이 수영장의 표면에 황금빛 띠를 드리우고, 그 아래로 퍼지는 빛의 반사는 마치 한 폭의 유화처럼 부드러웠다.
텅 빈 공간이었지만 그 안에 적막은 없었다. 오히려 고요함이 마음을 채우는 듯했다.
차분하게 출렁이는 물결 위로 따스한 오후의 평온이 내려앉았다. 발끝을 담그자마자 퍼지는 온기는 몸속 깊이 스며들었고,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이 찾아왔다. 익숙한 도시의 소음도, 분주한 일상도 모두 잊게 만드는 곳.
여기서는 그저 물에 몸을 맡기고 따뜻한 햇살 아래 쉬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완벽한 순간도 오래가지 않았다. 갑자기 어디선가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튀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아이가 텅 빈 수영장의 평화를 깨고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냈다. 아이는 신나게 웃으며 다이빙을 반복했고, 수영장 한쪽에서 나른하게 기대어 있던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눈을 반쯤 감은 채 입술을 달싹였다.
“그래, 네 세상이다…”
수영장까지 둘러보고 호텔 내부로 들어오니 작은 마트가 우리를 반겼다.
"와! 컵라면이다!"
딸이 소리쳤다. 스위스 융프라우에서도 파는 컵라면인데 여기라고 없을까.
딸이 장화 신은 고양이 모드로 나를 바라봤지만 여기에서 컵라면을 먹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네가 먹어보지 못한 것을 먹여줄게.' 내 눈이 딸에게 말했다.
하지만 냉장고에서 맥주는 집어 들었다.
나는 외국 호텔에 머물 때마다 꼭 확인하는 것이 바로 아침 식사를 어디에서 하는가였다. 어떤 호텔은 그 식당을 찾기가 어려워 늦잠을 잔 뒤에 헤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 호텔의 아침 뷔페는 2층에 있었다.
일본인이 만든 호텔답게 메뉴는 일본인들이 입맛에 맞게 구성되어 있었다.
미소 된장국, 고등어구이, 교자, 볶음 국수. 그리고 한국인을 위한 된장찌개.
그리고 나흘 동안 먹어본 결과 뭐 썩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냥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워터파크의 유혹
호텔의 자랑, 워터파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타 슬라이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떨어지면 반대쪽으로 튀어 나갈 것만 같았다.
튜브를 탄 사람들이 괴성을 지르며 미끄러져 내려왔다.
신기하게도 비명소리가 나라별로 다르게 들렸다. "야아 아악!", "꺄악!", "오 마이 갓!" , "왓 더 퍽!"
나는 돈을 줘도 안 탄다.
튜브 슬라이드는 네 개가 있었다. 각 슬라이드마다 경사와 길이가 달랐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신나게 소리를 지르며 내려오고 있었다. 한적에서 원 없이 탈 수도 있었다. 다만 깔판을 들고 걸어 올라가기가 귀찮을 뿐이었다.
파도풀은 이게 파도풀인가 싶을 정도로 한가로웠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겪어봤던 파도풀과는 달랐다. 서핑을 할 수 있는 파도풀이었다. 이곳에 비하면 국내 워터파크의 파도풀은 파도풀이 아니라 그냥 둥둥 풀이다.
내가 서핑을 하려고 하니 안내인이 간판 하나를 가리켰다. 서핑보드 10 USD.
그렇지 공짜는 없지. 워터파크 입구에서 10달러를 내고 보드를 빌려오면 파도풀 가운데서 안전요원이 파도를 타게 해 준다.
어디 놓고 간 보드가 없나 사방을 두리번거려봤지만 행운은 없었다.
"아빠! 빨리 가서 빌려와!"
나는 투덜거리며 입구로 향했다.
얼마동안 놀다 보디 파도가 없어졌다.
"저기 가서 누워서 선탠이라도 해!"
내가 아내에게 빈 선탠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아주 뚱뚱한 백인이 비키니를 입고 선탠을 하고 있었다.
"왜? 하필 저기야?"
"누워 봐! 엄청 날씬해 보일 거야!"
그 말에 아내는 나를 유수풀에 밀어 넣어버렸다.
유수풀은 우리말 그대로 우리가 전세를 내어버렸다. 아무도 없었다. 튜브에 올라 몸을 맡기고 한 잠을 푹 자도 될 만큼 길이가 길었다. 물은 아주 느리게 흘러가고 구름도 느리게 흘러갔다. 마치 이름 모를 계곡에 우리만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비타민이 온몸에 쏟아졌다.
그러다 딸은 워터파크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야생 닭이 낳은 병아리를 쫓기 시작했다.
괌에는 야생닭이 많다고 했다. 아무도 잡아먹지 않는다고 들었다. 왜? 질겨서 맛이 없단다.
첫날이 저물어 가고
해 질 녘, 우리는 해변으로 나갔다. 붉은 태양이 수평선으로 가라앉고,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바다에 비친 빛이 반짝이며 춤을 추는 듯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이 순간을 꼭 기억해야 해.”
딸의 손을 꼭 쥐며 말했다.
저녁, 그리고 볶음밥
첫날 저녁, 우리는 호텔 근처의 셜리스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스테이크와 볶음밥을 시켰다. 평소 볶음밥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딸이 허겁지겁 먹었다.
“이 볶음밥, 예술이야. 스테이크도 끝내 줘! 내일 또 먹자!”
딸이 입을 조물 거리며 말했다.
괌에서의 첫날이 저물어 갔다.
마무리
호시노 리조나레 좋은 점
1. 구내에 매점이 있어서 라면과 술을 조달할 수 있다.
2. 호텔 방에서 컵라면을 먹을 수 있다. (어떤 호텔은 못 먹게 하는 데도 있습니다.)
3. 미니바가 없어서 충동구매로 돈이 털릴 일이 없다.
4. 아주 가까운 곳에 셜리스 레스토랑과 탑 아일랜드 중국 음식점 그리고 페이레스 마트가 있다. (도보 5분 이내)
5. 워터파크가 있다.
6. Guam Premium Outlet까지 셔틀을 운행한다.
아쉬운 점
1. 호텔이 오래되어 층간 소음이 있다. (위층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다르니 복불복.)
2. 시내에서 좀 떨어져 있다.
3. 앞바다는 수영하기에는 좋은데 스노클링에는 적합하지 않다. (물고기는 하나도 안 보이고 시커먼 해삼만 잔뜩 있다.)
4. 워터파크 때문에 다른 호텔에 비해 가격이 좀 있다.
'여행, 잡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괌 여행 3일차 - 드디어 괌 남부 투어 (2) | 2025.02.23 |
---|---|
급똥의 철학: 인간은 어디서든 해결해야 한다 Part 1 (3) | 2025.02.19 |
패키지 괌 여행 2일차 에메랄드 밸리, 스페인 광장 그리고 사랑의 절벽 (2) | 2025.02.16 |
유명한 곳의 다리나 난간에 자물쇠를 누가 먼저 달기 시작했을까? (3) | 2025.02.15 |
언제나 훌쩍~ 올라가 보기 좋은 문수산 (5) | 2025.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