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 여행 4일 차 – 한적한 바다와 가족의 시간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호텔 창문을 비추고 있었다. 커튼 틈 사이로 스며든 따뜻한 빛이 방안을 채우자,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벌써 여행 4일 차. 어느새 내일이면 괌을 떠날 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오늘은 스노클링 가는 날이야!"
딸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환한 미소와 함께 딸을 등을 토닥였다. 아내도 옆에서 웃으며 애써 가져온 스노클링 장비들을 챙기고 있었다.
괌 여행 블로그나 유튜브 영상에서 추천해준 스노클링 장소는 이파오 비치, 리티디안 비치, 이나라한 자연풀장 그리고 에메랄드 밸리였다.
하지만 리티디안 비치는 아이를 데리고 가기에는 안전상의 문제가 있었다. 더군다나 차에서 내려서 장비와 짐을 들고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고 해서 포기했다.
이나라한 풀장은 어제 그곳의 난장판을 봤던 관계로 패스.
남은 것은 이파오 비치와 에메랄드 밸리다, 그런데 사실 마음 속에 찜해 둔 곳은 따로 있었다.
우선 이파오 비치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비치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주차장에도 차가 꽉 들어차 주차할 곳도 없었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이제 어디로가?”
아내가 물었다.
“따라만 와!”
나는 내심 미소를 지으며 차를 몰았다. 목적지는 Family Beach.
이름처럼 가족들이 함께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한적한 해변이라고 했다. 우리만의 시간, 우리만의 바다. 왠지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패밀리 비치는 에메랄드 밸리에서 여기 맞아? 싶을 정도로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차를 몰고 가면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패밀리 비치는 우리의 마음에 꼭 들었다. 이파오 비치와는 전혀 달랐다. 그 넓은 해변에 딱 세 팀만 놀고 있었다.
"여기 진짜 조용하다."
아내가 감탄하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도 한숨을 쉬며 풍경을 감상했다. 하늘은 한없이 푸르고, 바닷물은 맑디맑았다.
"빨리 들어가요, 아빠!"
딸이 신이 나서 내 손을 잡아끌었다. 우리는 스노클링 장비를 챙기고 천천히 바닷물로 걸어 들어갔다.
물속에 몸을 담그는 순간, 남국의 따뜻한 바다가 우리를 감쌌다. 바닷속으로 얼굴을 넣자마자 투명한 물살 속으로 작은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천천히 팔을 저으며 깊은 곳으로 나아갔다. 아내도 딸도 어느새 물속에서 작은 물고기들을 쫓으며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내는 물귀신이다. 수영도 할 줄 모르는데 스노클링 장비만 있으면 물에서 절대 나오지를 않는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스노클링을 하다가, 딸이 소리쳤다.
“아빠 여기 이상한 것이 있어.”
Spider Conch(거미 소라)를 잡다
나는 딸이 서 있는 곳에서 잠수를 했다. 바닷속 모래 위에 모래색과 똑같이 생긴 것이 보였다. 껍데기가 뾰족뾰족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것을 집어 올렸다.
"거미 소라다!“
내가 집어 올리며 외쳤다. 그동안 껍데기만 그것도 관광상품점에서만 봤던 것이었다. 뒤집어서 보니 기념품점에서 본 것과 똑같은 색이었다. 소라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는 듯 연신 가느다란 초록색 대롱에 매달린 두 눈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소라의 눈이 이렇게 생겼구나.
나는 뒤집어서 소라의 등부분을 닦아 봤다. 그랬더니 소라의 본 색깔이 나왔다.
"우와! 이게 뭐예요?“
”거미 소라야. 뿔이 거미발처럼 생겨서 그래.“
딸은 신기한 듯 소라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살펴보았다. 거미처럼 뻗은 껍데기가 신기했는지 한참을 들여다보며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소라가 위장을 하고 있었다니! 나의 머구리 본능이 꿈틀거렸다.
나는 스노클링을 해서 위장하고 있는 거미 소라를 두 개 더 찾아냈다.
딸은 신이 났다. 물속에서 노는 것 보다 거미 소라를 가지고 노는 것이 더 좋은 모양이었다. 최고의 아빠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에메랄드 밸리에서 다시 한 번 바다 속으로
몇 시간을 비치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있자니 배가 고파왔다. 먹을 것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할 수없이 호텔로 돌아가야만 했다. 시간도 거의 저녁떄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쉬움을 비치에 남겨두고 호텔로 가는 길.
눈부신 에메랄드 밸리가 우리를 유혹했다. 하지만 딸은 이미 피곤해서 골아 떨어진 뒤였다.
”여길 언제 또 오겠어?“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맞는 말이야.“
우리는 차안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에메랄드 밸리에서 스노클링을 하기로 했다. 딸이 자고 있으니 둘 다 들어갈 수는 없고 교대로 하기로 했다.
때마침 큰 버스에서 관광객들이 우르르 내렸다.
”어머! 여기 스노클링도 할 수 있나 봐!“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물에 떠 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부러운 듯 말했다.
에메랄드 밸리는 스노클링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이곳은 패밀리 비치와는 또 다른 세계였다. 바닷속이 더욱 맑았고, 더 깊었다. 다양한 물고기들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파란색, 노란색, 줄무늬가 있는 것 그리고 바다뱀까지….
배만 고프지 않았다면 아마도 해가 질 때까지 놀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 나에게 괌의 스노클링 명소를 추천하라고 하면 단연코 에메랄드 밸리를 추천하겠다.
"괌에 왜 와야 하는지 이제 깨달았어."
아내가 머리를 말리며 말했다.
”왜?“
”괌은 스노클링하러 오는 곳이야. 다음에는 에어비앤비로 집만 빌려서 오자. 호텔 필요 없어.“
”좋지!“
오늘 하루, 가족과 함께 보낸 소중한 시간은 우리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았다.
괌의 바다가 조용히 속삭였다.
"꼭 다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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